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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프로그램

EBS <다큐멘터리 K> 교육격차 - 4부 현수는 행복할 수 있을까

by 글루코사 민 2023.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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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먹먹한 마음으로 시청했던 이번 방송.

그 네 번째 이야기, 현수는 행복할 수 있을까.

 

매년 한 반에 꼭 몇 명씩 만나게 되는 아이, '현수'라는 이름으로 호명된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자발적으로 섬이 된 아이,

생활 습관이 아무것도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학교에 온 아이,

학교에 와야 하루가 시작하는 아이,

한 달은 지난 것 같은 그 상태로 가방을 가지고 다니는 아이,

매일 졸고 눈을 마주 치치 않고 무기력한 아이,

스스로 '저는 못하는 아이예요' '저 원래 그래요'라고 말하는 아이.....

개인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에서 일어나는 차이로부터 현수는 개인으로서 자기의 힘으로 성장해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답하는 게 좋은 교육이라고 생각한다는 선생님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번 방송은 보는 내내 참 마음이 아프고 울컥울컥 한 시간이었다.

 

이런 현수를 유독 많이 만날 수 있는 지역은 신도시보다는 원도심, 분양아파트보다는 임대아파트가 있는 학구였다.

번화한 도심이라고 알고 있는 곳에도 현수는 있었다.

반영구 임대 주택이 주요 학구를 이루는 이 학교는, 주소지상으로는 이 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맞지만 굳이 거리가 먼 옆 학교로 아이들을 입학시키는 자발적 선택에 의한 이동으로 학생수가 줄어들었다.

교육청에서 학구 조정을 해도 이사나 불법 전입을 통해 새로운 학교로 배정을 받는다.

이렇게 주택의 형태에 따라 과소학교와 일반학교로 격차가 생기는 것은 서울에서도 볼 수 있다.

 

항상 문이 개방되어 있는 반영구 임대 주택과 거주 주민만 통행할 수 있는 문으로 벽을 세운 바로 건너편의 아파트를 보며, 어른들은 경제 규모로 차단하고 사람들을 분류한다고 이 학교의 교장선생님은 말씀하신다.

학교로 가는 길에 5년정도 방치되어 있는 차량만 봐도, 이게 만일 민간 아파트였다면  이렇게까지 놔뒀을 거냐는 거다.

얼마 전까지도 학교 언제 없어지냐는 소리를 들었다는 선생님.

비슷한 계층끼리만 모이는 문제로 인해 다른 집단을 못 만나니까 서로가 이해가 안 되는 현상까지 생기는 이런 상황에서 학교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다른 학교에서는 운동장에 출발선과 도착선을 그리고 여러명의 아이들을 세워 질문에 해당하는 사람만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가기로 했다.

코로나로 학교에 못 와도 공부하는데 지장이 없었는지,

실시간 화상 수업에 집중할 수 있었는지,

코로나때 더 많은 학원에 다녔는지, 

엄마 아빠가 모두 출근해서 집에 홀로 있었던 적이 많았는지,

등교하지 않을 때 하루종일 누군가의 도움 없이 지낸 적이 많은지,

점심을 스스로 해결하거나 굶은 적이 많은지,

중고등학교 생활을 잘 할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지,

대학에 갈 수 있을 것인지,

내 삶은 행복할 것인지 등등

이런 질문들 속에서 아이들은 저마다의 상황에 따라 발자국을 떼었고, 질문이 모두 끝난 후 있었던 그 지점이 아이들의 새로운 출발선이 되어 도착점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기를 했다.

이때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출발 지점이 바뀌는 것 같아서 짜증 났어요'

'앞에 있는 애들이 부러웠어요'

'뒤에 있으면 도착선에 못 갈 거 같았어요'

'솔직히 앞에 있는 쟤네들을 어떻게 이겨요'

......

모두에게 들이닥친 재난이었지만 겪는 현실의 모습은 매우 달랐던 것이다.

어떤 아이는 엄청난 무게의 쇠신발을 신고 오고, 어떤 아이는 깃털 같은 신발을 신고 온다는 한 선생님의 말씀에 숙연해질 뿐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들에 있어서 해외에서는 어떻게 대처를 할까?

프랑스의 공립 교사로 재직중이신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우선 교육 지원 네트워크가 필요한 학교는 일반 학교 보다 한 담임교사에게 배정된 학생의 수도 적고, 임금은 3분의 2 가량이 높다고 한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재정과 인력을 쏟아부어야 하는 지역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라는 것.

작은 학교에 많은 재정을 투입하는 것이 불공평하다 혹은 왜 그 학교에 이렇게 많은 혜택을 주느냐는 질문을 하는데,

이는 미래를 위한, 미래의 프랑스 사회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는 것이지 그 학생들에게 특별히 많은 혜택이 돌아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누구한테나 일어날 수 있는 문제이고, 이런 모든 문제가 나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니까 개인적으로 막을 수 없는 경우에 사회가 연대해서 함께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시작하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많은 분야의 전문가들이 그 나라의 현수를 위해 노력하였다.

대한민국의 현수들이라고 다르지 않을텐데.... 

왜 프랑스의 현수들은 저런 보호를 받고 우리나라 현수들은 더 힘들어지는지 너무 마음이 아팠다.

 

마지막으로 선생님들께 현수에게 하고싶은 말이 무엇인지 묻는다.

너무 미안하다고, 본인도 현수였다며 울먹이며 말씀하시는 선생님.... 너의 잘못이, 너의 탁이 아닌데 격차가 나는 환경을 줄 수밖에 없는 세상을 만들어서 미안하다고 하신다.

그리고 자기의 몫을, 삶을 자기가 살아낼 수 있는 친구들을 기르고 싶다는 선생님.... 본인도 그 누군가에게 그런 보살핌을 받고 자라지 않았겠냐며 자기를 가벼이 여기지 말고 세상의 절반을 나라고 생각하고 나를 사랑하면 주위도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하신다.

아이들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시고 아이들을 향해 90도로 인사하시며 표정을 살피시는 선생님은 '학교에서 누가 나를 정말 제대로 기다려 주는구나'라고 생각하지 않겠냐며 아이들의 아침을 맞이해 주신다. 

또 괜찮다고, 넘어져도 우리가 있다고 말씀하시는 선생님.... 잘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일단 해보라고, 우리가 같이 싸워준다고, 선생님으로서 어른으로서 같이 싸워줄 테니 한번 해보라고 하신다.

방송을 보면서도 이글을 쓰면서도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쏟아져 나올 것 같다.

왜 이럴수밖에 없을까.

누구보다도 보호받고 반짝이는 삶을 살아야 하는 아이들이 왜 이런 격차 속에서 그 빛을 잃어가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모두가 다 잘먹고 잘 살자고 하는 것도 아니고, 모두를 똑같은 반열에 올리자는 것도 아니다.

일정한 나이 이후에 행해지는 노력에 대한 대가는 그것에 맞게 반드시 치러져야 할 것이며 본인 선택에 대한 결과는 스스로 감당해야 할 것이다.

단지,

아이들은, 아이들 만큼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몰려 어둠 속으로 빠져들지 않고 자기를 빛 낼 수 있는 선택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보장을  해줘야 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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