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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다큐멘터리 K> 대학혁신 - 03. 최고의 대학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by 글루코사 민 2023.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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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은 자국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과학자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히틀러의 유대인 탄압과 나치의 분서사건으로 1933년 미국 망명길에 오른 독일 베를린 훔볼트 대학의 교수였던 20세기 최고의 과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

(1933년 5월 10일 나치 분서사건, 나치 사상에 반하는 책 2만여 권을 베를린 베벨 광장에서 불태운 사건)

이를 두고 프랑스 물리학자 폴 랑주뱅은 '물리학의 교황이 유럽을 떠났다. 이제 자연과학의 중심은 미국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1938년 7월 히틀러와 손잡은 무솔리니 정권의 유대인 차별을 위한 인종법 발표를 피해 1938년 12월 스웨덴에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고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유대인 아내와 아들과 미국으로 배를 타고 망명을 한 천재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

갈릴레오 이후로 가장 위대한 이탈리아 과학자가 스스로 망명길에 오른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히틀러와 2차 세계대전은 미국 대학의 운명을 바꾸는 사건이었다.

세계를 호령했던 독일과 유럽 대학들은 몰락했고 미국의 대학은 스타 학자를 수혈받는 기쁨을 누렸다.

 

대학혁신, 세 번째 이야기에서는

초라한 과거가 있는 미국 최고의 대학들이 2023년 현재 상황이 완전히 바뀌어 98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세계 최고의 공대가 되고, 혁신의 상징 실리콘 밸리를 지탱하는 대학이 되었는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00년 내외의 시간 동안 이 대학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유럽 대학들, 특히 독일 대학은 나치당이 정권을 잡고 전쟁 전부터도 이미 학자들을 잃고 있었다.

자유의 바람이 멈춘 독일은 인재를 얻더라도 잃을 수 있는 그 대표적인 사례가 된 것이다.

이로 인해 미국은 아주 큰 영향을 받으며 굉장한 이득을 취할 수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가장 큰 변화는, 정부가 최초로 대학을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줄 투자처로 보기 시작했다는 것인데,

정부는 비용을 들여서 별도의 연구기관을 만드는 것보다 대학의 전문가들과 시설들을 이용하고 싶어서 정부가 대학과의 거래를 위해 제안서를 들고 온 것이다.

2차 세계 대전은 과학 전쟁으로 독일의 핵무기 개발, 잠수함 U보트, 폭격기 슈투카 등 최신식 병기에 대항하여 미국에서도 대학이 이 거대한 군사 전략에 참여한다.

하버드, MIT, 칼텍, 컬럼비아, UC 버클리와 같은 대학에 전시 연구비의 90%가 쏟아지며 대학에 대규모 자금 지원이 시작되었고, 

정부의 제안과 돈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대학은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발전했고 미국을 세계 최강 국가로 만들었다.

 

이제 대학은 과학기술을 주도하고 경제와 산업을 바꾸며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곳으로 서서히 변신 중이다.

현대 대학이 가지게 될 새로운 힘, 바로 '창조권력'이다.

 

창조 권력은 대학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기술을 가르쳐서 학생들이 졸업할 때 더 많은 것을 알게 하는 부가가치, 즉 무언가 가치를 더하는 행위이고 그것이 대학이 성취해야 할 목표라고 볼 수 있죠.

-우르퀴올라 미구엘, 컬럼비아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창조 권력의 대표, MIT

리처드 파인만, 윌리엄 쇼클리, 폴 크루그먼 등 98명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세계 최고의 공과 대학으로, 

그들이 세운 기업이 3만 개 이상, 그 기업들로 독립 국가를 만들면 세계 10위권 규모의 경제 대국이 된다.

 

1865년 보스턴 시내의 한 임대건물에서 학생 15명과 초라하게 시작한 MIT,

기부로 세워진 MIT는 처음부터 재정난에 시달렸고 하버드 대학에 6번이나 합병될 뻔했다.

다행히 1890년대에 MIT 명성을 끌어올린 사람은 열혈 학부모 토마스 에디슨,

이 나라에서 최고의 대학은 MIT라며 실제로 두 아들은 MIT에 진학한다.

그리고 MIT가 세계적인 대학이 된 것은, 1944년 4월 미국 타임즈에 소개된 비밀 과학자 부대의 장군 버니바 부시이다.

1941년 과학연구개발국 총책임자로 부임하여 대학의 연구자들을 발굴해 듣지도 보지도 못한 아이디어들을 탐구하게 한다. 

연구원을 뽑을 때 이런 질문을 한단다.

'당신은 한밤중에 고무보트를 타고 독일군이 점령한 해안에 상륙하려고 합니다. 목표는 적군의 무선장비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적군은 무장한 호위군과 군견, 서치라이트로 무선장비를 방어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상상할 수 있는 어떤 무기든 휴대할 수 있습니다. 그 무기를 묘사해 보십시오.'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 아이디어를 유용한 발명품으로 바꿔달라는 이야기이다.

이렇듯, 역설적으로 전쟁은 대학을 풍요로운 탐구의 공간으로 만드는 기회였다.

 

그런데 왜 대학이었을까?

학생들! 학생들이야말로 미래의 학자이자 교수입니다.
대학이 연구와 혁신의 강력한 중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은 각 분야의 저명한 학자들과 젊은 할다즐을 한 곳에 모으기 때문이죠.
그들이 특정 주제나 분야를 다음 단계로 끌어올릴 사람들입니다.

- 윌리엄 커비,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 -

 

대학이 다른 정부 기관들에 비해 한 가지 나은 점이 있어요,
교수들에게 어떠한 일을 할지 결정할 자율성을 준다는 것입니다.
이런 부분이 실험, 시행착오, 실패를 허락하고 성공도 허락하는 것이죠. 
이것이 정부가 대학으로 눈을 돌린 하나의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우르퀴올라 미구엘, 컬럼비아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대학은 미래에 다가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훌륭한 동력이죠.
이들은 아직 아무도 답하지 못한 질문에 대해 답을 합니다.
학교의 연구진들은 자발적으로 지식을 쌓아요. 단순히 관심이 있어서요.
즉, 대학이 하는 일은 미래에 활용될 수 있는 지식의 보고를 만드는 일입니다.
대학의 마법 중 하나는 계속해서 많은 것이 플러그를 꽂는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지금 필요한 우선순위는 아니지만 미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니까요.

-데이비드 라바리, 스탠퍼드 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MIT가 발명한 대표작인 마이크로파 레이더,

이것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마이크로파와 레이더 연구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MIT 연구소 레드랩에서 이루어졌고, 미국 전체의 물리학자 20%가 모여 150여 가지의 레이더 장치를 개발했고, 방독마스크, 화염 방사기, 냉동 건조식품, 항공 야간 투시 카메라 등 거의 모든 전시 무기를 개발했다. 

이 모든 것을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가  1945년 5월 7일, 독일이 서방 연합군에 항복 1945년 9월 2일 2차 세계대전 종전되면서,

1945년 11월 전쟁동안 개발한 비밀 무기를 공개했다.

굳이 이런 행사를 한 이유,

전쟁과학의 성과물이 세상을 바꾸는 기술이 되길 바랐던 것이다.

또한 레이더 연구의 성과는 전파 천문학, 전자레인지 등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2차 세계 대전에서 부상병들이 생명을 구한 페니실린은 지금까지 가장 위대한 약으로 손꼽히면서 질병과의 싸움에서 큰 진전을 이뤄낸다.

과학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고 이것은 대학에서부터 시작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 미국 과학기술의 원천 경쟁력은 대학이다.

이 대학들을 중심으로 지식이 창조되고 새로운 사업이 창출된다.

GPS, 컴퓨터, 인터넷, 바이오산업, 인공심장, MRI, 구글 검색 알고리즘의 원형까지 모두 대학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미국 대학이 그렇게 창조적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혁신을 지원할만한 재정적인 구조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대학이 산업의 역할 중 일부를 맡아 새로운 기업을 만들고 정부는 금융계의 역할을 맡아 벤처 자금을 지원하며 산업계는 이전까지는 잠재적 산업분야로 여겨지지 않았던 새로운 분야로 확장하게 됩니다.
대학과 산업계 그리고 정부의 상호작용이 있었던 겁니다.
그렇게 전구에 불이 켜졌죠.
....
대학이라는 연구집단은 창조성에 있어 늘 앞서 가게 되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대학의 창조권력입니다.

-에스코비츠 헨리, 트리플 헬릭스(Triple Helix) 연구소 소장, 영국 뉴캐슬 대학교 전 경영학 교수-

 

이렇게 미국의 대학들은 하버드라는 첫 번째 대학이 탄생한 지 300년 여 년이 지나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세계적인 창조 권력이 되었다.

 

그리고,

애플, 구글, 인텔, 메타 등 전 세계 IT 기업의 메카, 실리콘 밸리가 있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래 지역은 원래 과수원과 채소밭으로 덮인 시골이었다. 

 

이 시골땅을 세계 최고의 혁신 생태계인 실리콘 밸리로 바꾼 것은 그곳에 있는 한 대학, 스탠퍼드 대학이다.

 

스탠퍼드 대학을 설립한 사람은 캘리포니아의 정치인이자 재벌이었던 릴런드 스탠퍼드.

1884년, 결혼 후 18년 만에 얻은 외아들을 장티푸스에 걸려 15살에 아이를 잃고 ,

절망 속에서 아들을 추모하고자 여의도의 4배에 달하고 서울 소재 모든 대학의 면접을 합친 것보다 큰 8,180 에이커의 목장에 대학을 설립하고 아들의 이름을 따서 릴런드 스탠퍼드 2세 대학이라고 부른다.

이 부부가 설립한 스탠퍼드는 사적 토지 무상 제공을 받은 대학으로 절대로 팔지 않는다는 조건에 거대한 토지를 기부받은 것이다.

 

이 8,180 에이커의 팔지 못하는 땅은 훗날 기적을 일으키는 곳이 되었고 세계 최고의 혁신 생태계로 바꾼 사람은 실리콘 밸리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프레더릭 터먼이다. 

스탠퍼드 대학을 서부의 MIT로 만드는 것이 꿈인 그는, 8,180 에이커의 땅에 스탠퍼드 산업단지(훗날 스탠퍼드 연구 단지)를 만드는데, 이것은 세계 최초의 대학이 소유한 연구단지이다.

대학이 가진 땅을 첨단 기술의 기업들에 장기 임대를 하는 것이다.

터먼은 소규모 사업자들에게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토지를 임대하고 그 기업들이 대학 연구를 활용하고 졸업생들을 고용하며 대학이 큰돈을 벌 것으로 생각했고, 완벽하게 그렇게 되었다.

GE, 코닥, 록히드 항공 연구소 등 혁신적인 기업 연구소들이 대거 입주하게 되고 스탠퍼드 대학은 이 혁신적인 기업들과 공동 연구를 하고 졸업생을 이 기업들에 취직시킬 수 있었다. 

스탠퍼드 대학은 산업을 일으키고, 도시를 만들고, 문화를 창조하며 실리콘 밸리의 엔진이 되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프레 더린 터먼이 제자들에게 빌려준 538달러로 차고에 초라하게 세운 회사,

이것이 세계 벤처 기업 1호, 휴렛팩커드이고,

휴렛팩커드는 1995년 포브스에 올해의 기업으로 선정되었다.

 

스탠퍼드 졸업생들의 기업이 연간 창출해 내는 경제효과는 2조 7천억 달러에 달하고, 

1930년대 이래 4만 개 이상의 기업과 540만 개의 일자리가 실리콘 밸리에서 창출되었다. 

미국 경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실리콘 밸리는 스탠퍼드 대학 기부금의 주요 원천이고, 스탠퍼드 대학이 잘 되는 이유 중 하나가 실리콘 밸리인 것이다. 

대학이 잘 운영되어서 공익 연구를 진행하거나 산업 등 민간 부문은 그것을 활용해 혁신을 만들 수 있다. 

 

스탠퍼드가 실리콘 밸리를 만들었을까요?
실리콘 밸리가 스탠퍼드를 만들었을까요?
수년간 최고의 이론들은 실용적인 발명에서 나왔고 또한 이론에서 최고의 발명들이 등장했습니다.
 즉, 실용과 이론, 이 둘은 긴밀하게 얽혀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생산적인 방법은 실용과 이론을 합치는 거죠. 
둘 다 연구하는 대학에서 말이에요.
그러고 나서 주변 지역 개발의 핵심이 되는 것입니다.

-에스코비츠 헨리, 트리플 헬릭스(Triple Helix) 연구소 소장, 영국 뉴캐슬 대학교 전 경영학 교수-

 

그리고 전 세계는 자신만의 실리콘 밸리를 만들고 싶어 했고, '창조 권력'이 된 '대학'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였다.

1970년대, 그 당시 대한민국은 1인당 국민 총소득 280달러로 실리콘 밸리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미시건 주립대 총장 존 해너가 대외 원조를 총괄하는 미국 국제발처 처장이 되면서 그의 제자인 정근모 박사와 함께 '한국 응용과학 및 공학 전문 대학원 설립'이라는 제안서를 가지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이공계 특수 대학원 설립을 권유했고,

1970년 8월 미국 최고의 과학자들이 카이스트 설립을 돕기 위해 대한민국을 방문하였으며, 이때 단장인 실리콘 밸리의 아버지 터먼 교수가 '한국과학원 설립에 관한 조사보고서'를 제출하였고, 

1971년 2월 16일, 과학기술처 경제개발특별예산으로 추진하여 카이스트가 탄생되었다.

현재까지 카이스트는 총 7만 5천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고(2023년 기준),

카이스트 출신이 창업한 기업이 1270여 개 이상, 

이들 기업의 매출 총액이 약 28조 원, 고용한 인원이 약 4만 7천여 명이 된다. (2021년 기준)

 

이공계 특수 대학원의 설립은 인재의 해외 유출을 막고 과학 기술 인력을 꾸준히 양성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입니다.

- 정근모, 카이스트 석좌교수 -

현대 사회에서 대학은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가 급격하게 변하고 있고 그 변화 속에서 생각과 사상과 기술을 선도하는 곳이 있어야 하는데,
그 역할을 하는 곳이 대학이에요.
....
대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미래에 대한 생각과 질문이고,
그렇게 하면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다, 
창조국가가 될 수 있고 창조 대학이 될 수 있다, 
그게 바로 힘인 거예요.
그게 권력이 되는 거예요.

-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 -

 

 

너무 훌륭한 대학들의 과거와 현재를 보고 있노라니 뭔가....

가슴이 답답하면서 화가 났다.

왜!!!!

왜 대한민국의 대학들은,

왜 대한민국의 대학을 들어가기 위한 입시는,

왜 대한민국의 대학을 들어가기 위한 입시를 치르기 위한 공부는,

왜 대한민국의 대학을 들어가기 위한 입시를 치르기 위한 공부를 향한 사회적 인식은

이래야만 하는가!!!!!!

대학을 위해 경주마같이 달려온 학생들은 대학 입학 수 학문의 자유나, 새로운 시각을 배우거나 경험을 하지 못한다.

여전히 지위 권력만 추구해 오고 머물러 있고,

대학 서열만 중요한 대한민국 교육,

대학 학벌이 평생 우려먹는 사회,

출신 대학을 특권으로 삼으려는 문화,

자격증명과 인증만 해주는 대학,

그래서 그렇게 동네에 서울대 출신 어찌고 저찌고가 붙은 병원이 많고, 뭔 대학 출신 원장 직강이라는 학원들이 많은가 보다.

 

세계 대학 순위 100위 내 미국 대학은 39개,

압도적인 1위임에도 눈앞에서 세상이 변화되는 것을 보며 더 발전하려고 노력하는 나라이다.

대학은 교수와 학생이 지식을 창조하는 곳이라며 더 발전하려고 노력하는 나라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어떤가.

창조 권력을 위해서는 틀을 깨야 하는데 우리들은 아이를 낳고 대학을 들어가고 이후에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또 아이를 낳고,

이 모든 것이 몇 세대 동안 반복 되면서 여전히 틀을 깨면 안 된다고 주입을 하고 있다.

틀을 벗어나서 살면 뭔가 큰일이 날듯이 말이다.

세계 최초의 대학은 1088년 이탈리아에 설립된 볼로냐 대학교라고 하는데,

이때의 대학은 학벌과 사회적 출세를 보장하는 지위권력이었단다.

여전히 대학이 지위권력인 대한민국은 2023년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1088년을 살고 있는 것인가!

답답허다.

 

세계 대학 순위 100위 내 미국 대학은 39개,

압도적인 1위임에도 눈앞에서 세상이 변화되는 것을 보며,

대학은 교수와 학생이 지식을 창조하는 곳이라며 더 발전하려고 노력하는 나라이다.

 

누구도 가만히 서 있으면 정상의 자리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무엇이 승리할지는 두고 봐야죠.
어떤 리더십도 영원하지 않아요.

 

과연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깊이 생각하고 뼈를 깎는 변화가 있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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